주식/투기는 예술이다

엉덩이로 돈을 버는 법 - 왜 트레이더는 실패하고 가치투자자는 성공하는가

Gosingasong 2025. 1. 17. 16:2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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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에게 큰 돈을 벌게 해준 것은 나의 머리가 아니었다.
그것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.
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다.
시장을 올바로 판단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."
- 제시리버모어
 
머리로는 알고 있는 건 아무 소용이 없으며
마음으로 깨달아야
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말은
투자 세계에서만큼
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을까?
 
24년 11월 트럼프 당선과 함께 시작된 코인 불장에서
2배를 벌었던게 무색할만큼
12월과 1월의 시장에서 대부분 수익을 반납했다.
그나마 다행인 것은
시장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느껴서
미리 출금해놔
손실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것.
환경 설정의 중요함을 또 이렇게 느낀다.
 
나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?
먼저 시세 초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
엉덩이가 너무 가벼웠다는 것.
시세초입에서만큼은 엉덩이를
천근만근 무겁게 하는 것이
가장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.
세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좋은 기법이라고 생각한다.
 
그렇다면 왜 올랐을 때 존버하는게
이토록 힘이 들어
대부분이 투자에서 실패하는 비극이 일어날까?
 
가장 첫번째로는
말 그대로 시세초입이라는 상황은
매우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.
이 시세초입을 제외한 90%가 넘는 기간은,
인간에게 손실기피의 본능이라는 증폭기를 거쳐
100%의 가까운 시기에
줄때 챙겨야 한다는 output을 도출하도록 유도한다.
 
거기에  
another level로의 시세초입이라는 걸
볼 수 있는 눈을 키우려면,
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고,
그 경험은 다시 '줄챙'이라는
본능을 강화시키기 마련이다.
 
두번째로는, 인간은 복리를 체감할 수 없도록
시스템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.
loss-averse는 아주 유명한 인간의 본능이지만,
복리를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은
투자세계에서 더욱 큰 비극임에도
잘 알려져 있지 않다.
이는 손실은 90%가 경험하지만,
복리를 경험하는 이는 몇 없기 때문이며
복리를 경험해본 이는
복리를 계좌의 숫자로써 체감했기에
이 인간의 본능을 캐치하지 못한다.
 
마시멜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
'눈 앞의 확실한 보상' 앞에서
15분을 못참는게
인간의 본능이다.
하물며 '불확실한 보상'에 대한 '복리'?
인간은 절대 상상력만으로는
복리의 위력을 느낄 수조차 없다.
 
이 두가지 이유로 알바트로스님께서
파동이고 저항이고 보지 말고
그냥 가만히 냅둬보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한다.
 
그렇게 나는 12월 시세초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
가만히 냅둬보기 시작한다.
정확히 그 때부터
시장은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
코인 시장의 빠른 사이클 덕에 얻었던
꽤나 큰 평가수익을
모두 반납했다.
 
그리고 1월초 비트코인 시세의 변동성을 감지한
일부 펌핑 세력들의 마음이 급해지고
잡코인들의 시세가 분출되기 시작한다.
그러나 탐욕의 끝에 서있어
개인들의 힘이 매수에 집중되었던
매우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,
그 곳은 나의 무대가 아닌, 무덤이었다.
잃어버린 평가수익에 대한 허무함과 
조급함의 콜라보레이션으로
나의 무대가 아닌 곳에서
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.
 
오랫동안 나름 유지했던 시스템에서 작은 구멍이 발생하자,
그 구멍 사이로 탐욕이 비집고 들어와
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고
이 바닥에선 정말 한 순간의
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꼈다.
 
내가 믿고 있었던 나의 통제력이란
얼마나 허무한지 다시 한 번 느끼며
환경 설정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..
 
인생이 바뀔만큼 큰 부자가 된 투자자는
왜 트레이더가 아닌 가치투자자인가?에 대한 해답은
내가 위에 적은 것에 모두 적혀 있다.
 
가치투자자는 시세에 대해 눈과 귀를 닫는다.
그렇기에 시세초입이라는 것을 몰라도
기업가치라는 족쇄가 풀리지 않는 한
엉덩이가 자유로울 수가 없다.
그리고 자연스럽게 복리를 체감하게 된다.
 
또한 기업가치라는 융통성 없어 보이는 시스템은
자연스럽게 시스템에 작은 구멍도 허용치 않는다.
융통성이 없기 때문이다.
 
시세만 바라보고 사는 트레이더는 
시세를 바라볼 때 자아와 시장을 분리하는
관조의 자세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.
비극적이게도 이 상태는 한 번 초인이 되면
계속 유지되는게 아닌
시장에 남아있을 때까지
꾸준히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.
그렇기에 이 바닥 일이 도 닦는 일인 것이다.
 
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치투자자로 전향할 것인가?
그렇지 않다.
나는 나만의 낭만을 트레이딩에서 찾았으며
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
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을 즐길 것이다.
 
코인 시장에서만큼은
탐욕이 한 점에 모이는 아주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,
단기 트레이딩은 아예 끊어버릴 것이다.
그리고 base를 다진 종목들과
나의 때를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.
그리고 그 때가 오면 과감하게 모든 걸 투입할 것이다.
 
다행히도 지난 시간동안
시세초입을 보는 눈은 떠졌고
이제 남은 일은 엉덩이를 지키는 일 뿐이다.
 
이 모든 글은 내 엉덩이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글인 것이다.

 

 
허나 단순히 엉덩이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생각만으로는
내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 수 있다.
매수한 순간부터 매도하기 전까지는
매 순간이 'go'다.
 
트레이더가 수익을 짧게 마무리하는 이유는
그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
잠깐의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한
확실한 수익구간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.
쉽게 말해, 매 순간 'go'를 외칠 수 없기 때문이다.
 
그러나 복리를 누리기 위해선,
수급의 평균적인 장기 흐름을 믿고
결국 시장의 불확실성에 맡겨버려야 한다.
 
그렇다면 어떻게 하면
시장의 불확실성을 신뢰할 수 있는가?
이 또한 환경 설정을 해야 한다.
즉, 사고의 체계를 바꿔야 한다.
보유하고 있는 종목의 'go'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,
 
"현금을 포함한 다른 종목을
보유종목을 매도한 돈으로 매수한다고 했을 때
기대 수익률이 더 높은가?" 
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.
대부분의 경우 확신의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.
그렇다면 쭉 보유하는게 가장 기대값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.
 
만약 확신의 대답을 할 수 있다면,
내 현재 세계관 안에서
그건 최고의 선택이므로
결과와 상관 없이 쿨하게 매도하면 된다.
 
미래에 돌아봤을 때
매도의 결과가 형편 없었다면
그건 그 때 피드백하면 될 일이다.
 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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